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일 만들기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자 작가, 비영리 단체 대표인 이길보라 감독이 말하는 임팩트 커리어

2024.06.08

임팩트생태계

코다*, 탈학교 청소년,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자 작가, 비영리 단체의 대표. 그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여러 갈래로 나눠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됩니다. 바로 이길보라 대표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 커리어 포럼 첫 번째 세션에서는 이길보라 대표가 자신의 고유한 이야기를 일로 만들어 온 방법, 그리고 그 일이 사회에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과정을 공유했습니다.

*코다: CODA, Children Of Deaf Adult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들을 일컫는 말

주요 내용 미리 보기 👀

–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공간에서 배우고 교류하는 ‘로드스쿨러’의 경험담

–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과정

– 같은 경험을 공유한 코다들과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이유

*이 콘텐츠는 2023년 11월 진행된 임팩트캠퍼스 2023 커리어 포럼 <임팩트 커리어가 포트폴리오를 공유하려고 합니다>의 세션 발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길보라입니다. 저는 어떤 자리에서 저를 소개할 때 항상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농인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이 이야기꾼의 선천적 자질이라고 굳게 믿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듭니다.”

 

제가 이런 소개를 만들기까지 저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일로 만들어 온 과정, 그리고 그 일로 임팩트로 연결시킨 과정을 세 가지 질문을 경유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는 고등학교 1학년, 17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다큐멘터리 PD 혹은 NGO 활동가가 되고 싶었는데, 학교에서는 일단 대학교에 진학해서 방송국에 입사하라는 거예요. ‘나는 그냥 좋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싶은 건데, 학교나 방송국이라는 명함이 꼭 필요할까?’ 의문이 들었어요.

 

동남아시아를 여행하고 자원봉사를 하면서 저의 미래를 고민해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꺼운 여행 계획서를 만들고 주변의 어른들을 설득해서 후원을 받은 결과, 무려 800만 원의 여행 자금을 모았어요. 그 돈으로 8개월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사람들을 만나 설득하고 지지 받는 과정이 저의 인적 자원과 사회적 자산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와 제 친구들은 우리 자신을 ‘로드스쿨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공간을 넘나들며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이라는 뜻이에요. 저의 첫 다큐멘터리 단편 영화 제목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 질문,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의 이야기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을 코다(CODA)라고 불러요. 코다는 부모에게서 수어를 배우고 세상으로부터 음성 언어를 배워, 동시에 두 가지 언어와 문화를 경험하며 자랍니다.

 

앞서 말씀드린 ‘로드스쿨러’라는 말을 만들고도 스스로 코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요. 20대 초반에 누군가가 “보라 너 같은 아이들을 코다라고 한대.” 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렸을 때부터 해소하고 싶었던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코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바로 그 궁금증이 첫 장편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의 시작이 됐죠.

카메라를 통해 엄마, 아빠의 삶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렸을 때 자랐던 공간을 가보고, 내가 썼던 일기장을 살펴봤어요. 그러면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 못 하는 불쌍한 장애인과 그 가족’이 아니라, 우리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저만의 고유한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어요.

세 번째 질문, ‘코다’로서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영화가 개봉한 이후, 다른 코다들과 우리의 경험을 나누고 공유하는 자리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외국에는 코다들이 모인 단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희는 영국에서 열린 코다 캠프에 참여했고, 거기에서 수어와 음성 언어를 포함한 다양한 언어로 교류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코다가 있고, 제가 모르는 새로운 세계가 있었죠.

 

이 경험을 알리고 싶어 한국 코다들과 책 <우리는 코다입니다>를 공동 집필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비영리 스타트업 ‘코다코리아’를 창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다들이 모여서 활동을 지속하려면 프로젝트성 모임이 아니라 단체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은 사무국을 꾸려 활발히 활동하고 있죠.

 

최근 ‘코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거예요. 영화 <코다>가 미국 아카데미상 3관왕을 수상하면서 언론에도 등장했고 얼마 전에는 반짝이는 워터멜론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기도 했었죠. 사회적으로 이 두 세계를 왔다갔다하는 코다에 대한 관심, 수어에 대한 관심, 농인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많이 높아지고 있어요.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앞서 제시한 3가지 질문은 영화감독, 작가, 코다코리아 대표이자 활동가로서의 저의 커리어를 만들어온 출발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영화 만드는 일을 하고 싶은데 뭘 만들어야 할까? 활동가가 되고 싶은데 무엇을 해야 할까? 라는 생각만 있었죠. 제가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고, 그 답을 찾고 싶어서 행동했고, 행동이 결과물이 되고 메시지가 되면서 사회의 변화를 만드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팩트가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다듬는 일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오신 많은 분들은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 거예요. 비슷한 나이, 비슷한 대학생인 것 같아도, 우리는 모두 다 다르고 고유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어떻게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견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나의 일이 되고 사회에 영향을 주는 길이 될지, 오늘 이 자리를 통해 함께 상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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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하는 일, 나의 커리어에 대해 지금은 명확한 답이 없더라도 괜찮습니다. 질문하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어떻게든 스스로 답을 만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일단 질문한 뒤, 행동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한 이길보라 대표처럼요. 이제 여러분에게 여쭤보고 싶어요. 여러분이 세상에 던지고 싶은 질문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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